병신년 마지막 달 12월, 가는 것과 오는 것에 아쉬움과 기대가 섞여있다. 아쉬운 것은 가고 다가올 새로운 생명의 봄을 잉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워내는 계절이기도하다.

떠나야 할 때를 가장 잘 알고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단풍잎은 가장 붉고 아름다운 때를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이제는 몇 잎 남은 마지막 잎 새를 보내려 하고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아름답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같다. 찬란하고 강인한 봄의 생명력은 가을의 비워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이치는 생성되었으면 반드시 소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밝고 맑은 새로운 생명의 모습으로 재탄생 되어 만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이치라고 해서 너무 거창한 철학적 사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이 계절이 주는 스산함을 구경하며 지내는 동안 오색으로 물들었던 엊그제 나무들은 다가올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제 살을 태워가며 견뎌내는 과정인 것이다. 찬란한 생명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말이다.

우리네 인생 또한 누가 초대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왔다가 허락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 떠나가야 한다. 사는 동안 엄청난 재산을 모은 사람도 많고 더없이 화려한 명예를 얻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모두 이 세상을 떠나갔다. 나중을 위해 자신을 남겨놓지 않는 자연처럼 말이다.

요즈음 연일 지속되는 뉴스는 우리에게 슬픔과 절망, 상처를 주는 소식들뿐이다. 더 이상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우리 사회와 역사가 갖는 아픔, 어찌 풀어가야 할지도 모를 만큼의 먹먹함에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는 이 계절에서 자연의 섭리에서 배운대로 모든 것을 비워내고 찬란한 봄의 생명력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되새기고, 기억을 온전히 남기기 위해 기록하는 것, 이것이 ‘송구영신’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가슴 아픈 일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고 애써 기억에 새겨야 할 것이다.

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나쁜 기억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괴롭다고 해서 피하려고만 한다면 기억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발목을 잡는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억은 족쇄가 아닌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마주 앉은 이 날을 잘 떠나보내야 한다. 다시 못 올 시간을 찬찬히 살펴 기억에 새기는 것, 오늘을 배웅하는 최고의 작별인사가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갖고 다스리던 왕조시대에도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그 권력을 버리고 떠나간다. 그 떠나간 백성들의 마음을 누군가 얻게 되면 백성들은 그를 따라간다. 고려가 그렇게 해서 망했고 조선이 그렇게 해서 새로 섰다. 조선이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을 통해 백성의 삶을 안정시켜서 백성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살던 때로부터 6백 년 넘게 지난 지금도 정도전의 이 말은 여전히 의미가 깊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따르고 떠나는 것이 드러난다. 국민의 마음이 떠나면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게 되니, 한 번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때 국민의 마음을 얻은 자는 계속 지키려고 노력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도 새로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약하다고 힘으로 위협하고 국민이 어리석다고 계략으로 속이면 결국 그 마음을 얻지 못해 국민들이 떠나가게 될 것이다. 오늘 마주 하고 있는 국가적인 사태를 잘 어루만지어 배웅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맞아야 할 것이다. 이미 권력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빠져 나뒹굴었는지를 보았지 않은가. 이 땅의 정치인들이 힘과 계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되기를 바라면서 초연이 떠나려는 초겨울에서 자연의 섭리로부터 한번쯤 우리네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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