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모두가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생 아들을 숨지게 하고 시신마저 심하게 훼손한 '비정한 아버지'를 보며 시민들은 몸서리를 쳤다. 부부 모두 사이코패스적 성향 보다는 극단적인 이기적 성향, 미숙한 자녀양육 형태, 경제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2년간 아동학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동학대의 70% 이상이 부천 초등생 사건과 같이 비정한 부모에 의한 것으로 확인된 것을 보아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늘 사건 사고에 뒤 따르는 목소리가 있다. ‘신고의무자·보호기관·수사기관의 체계적인 협조만이 아동학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책’,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와 피해아동 발견 및 의심 시 신속한 신고 방법 등을 교육하고 인력 확보’등. 다시 말해 예산을 늘리고 물리력을 동원해서 사전 예방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곪아 있는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봉합하자는 것인데 재발방지 대책은 아닌 듯하다.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사회, 국가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의 모임은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유지되며 그 사회의 규칙은 어떤 궁극적인 가치 기반 위에 있다.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과 그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 기반일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기를 바라고 지키리라 믿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 사이의 상호성이다. 내가 이것을 지키면 저 사람도 이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인데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치라는 것도 그냥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번에 끔찍한 사건이 터지자 역시나 교육부는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미취학, 중학생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행위에 대해 교육적 방임 여부를 적극 수사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온통 야단법석이다. 늘 있어왔던 호들갑들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우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먼저 도망가 버린 것을 보았다. 그들을 믿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 사고 수습과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사회적으로 이제는 믿음이 위태위태하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임진왜란을 앞에 두고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치와 도리를 지켜, 시민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다. 모두가 이 시대의 충무공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구세주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망국의 원인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끝까지 이치를 따지고 도리를 지켜야 한다. 이치와 도리가 없으면 결국 망할 뿐이다. 그것은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다.

이치가 이미 혼란한데도 사람과 사물이 혼란하지 않는 이치는 없으며, 도가 이미 망했는데도 집안과 나라가 망하지 않는 도리 또한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가 혼란한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무지막지한 혼란을 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은 외세의 문화 너무 강해서, 또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 팽만에서 오는 부작용 등 여러 가지로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변적인 것이다. 주된 원인은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을 우리사회가 이치[理]와 도리[道]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100년 전 때 나라가 무너진 것도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사회적 리더들이 먼저 도망가는데 사회적 일선의 안보 책임자와 시민들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경제적 산물인 거대한 도시가 있고, 글로벌기업이 있어도 그것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 도망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뿐이다.

이번 부천 아동 사망 사건을 두고, 우리가 외면한 사회적 도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편집국장 박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