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탄광촌은 해발 600～700미터의 고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늘 식수난을 겪는다. 집집이 수도가 없던 1970년대 초반까지의 태백탄광촌에는 사택 마을 단위로 공동수도가 있었다. 공동수도라도 종일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2～3회씩 한 번에 2시간 정도 물이 나왔다.

물 나오는 시간이 되면 모여 놀던 주부들은 저마다 집으로 뛰어갔다. 서두르느라 애를 들춰 업고 허겁지겁 빨래하는 모습은 난리를 만난 사람 같았다. 사택이 좁아, 물을 받아놓을 통을 둘 곳도 없으니 그저 물 나오는 시간에 맞춰 빨래하는 수밖에 없었다. 빨래가 없는 집은 공동수도로 달려가 물을 받느라 분주했다.

공동수도에서 집까지 주로 초롱으로 날랐다. 물 나르기는 육체적인 힘이 필요했으므로 남편들이 물지게를 졌다. 5～6살짜리 어린아이까지 따라나서 한 바가지 물이라도 더 보탰다. 하루 일과 중에 물 나르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집안일은 주부의 전담이던 그 당시에도 물 나르기만큼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초롱을 늘인 물지게를 진 광부들의 모습은 낯익은 탄광촌 풍경이었다. 공동수돗물의 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먹는 물은 주로 산꼭대기에서 샘물을 길어왔다.

골짝골짝, 골목골목에서 물을 받으러 나온 사람들로 공동수도에는 줄이 지그재그로 몇십 미터씩 이어졌다. 가끔 순서를 놓고 물싸움도 있었다. 초롱만 놓은 뒤 늦게 나타나서는 순서가 먼저라고 우기다가 생긴 싸움, 늦게 온 이웃집 초롱까지 맡아 슬그머니 물 받아주다가 생긴 싸움이 가장 흔했다. 물 한 초롱에 이웃과 싸움까지 하였으니 ‘물 쓰듯’ 물을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사택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수도 시설마저도 없었으니 우물이 있는 곳이나 샘에 가서 길러 와야 했다. 어쩌다 사택의 공동수도에 초롱을 댔다가는 텃세가 만만치 않았다. 사택단위별로 공동 유대가 강한 만큼 탄광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유세를 부렸다.

자기가 사는 사택의 공동 우물에 자리가 없을 때는 남의 사택동네에 가서 빨래하기도 한다. 빨래 순서는 사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남의 우물에서 빨래하다가도 그 사택 사람들이 오면 얼른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1960∼1970년대는 빨래조차도 빈자리를 찾아 기다리면서 했으니 탄광촌 주부들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그만큼 물이 귀하다 보니 집에서 물을 쓸 때도 단계가 있었다. 쌀 씻은 물은 설거지물로 사용하고, 설거지 마지막 행군 물은 모아두었다가 걸레를 빠는 물로 사용했다. 탄광촌 주부들은 물 한 방울을 헤프게 쓰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빨래는 세수하고 난 허드렛물이나 개울물로 했다. 그렇게 빨래하고 나서 마당에 널어두면 빨래는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2～3일이 지나야 말랐다.

세탁기도 세제도 없던 시절, 고무장갑마저 없던 그 시절, 고무장갑이 있어도 돈을 아끼려고 일부러 안 끼던 그 시절에 탄광촌 주부들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빨래했다. 그 시절 어느 주부인들 빨래 안 하고 살았으랴만 광부의 아내들은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통이 더 컸다. 석탄가루가 묻은 광부 작업복은 매일 빨아 바꿔 입어야 했으므로 광부의 아내는 다른 주부들보다 빨래의 양이 많았다.

작업복 같은 두툼한 옷들을 빨래할 때는 물에 한참 담근 뒤에야 평평한 돌 위에 놓고 방망이질해댔다. ‘두드려 빨아주는 세탁기’의 원조 격인 방망이질을 하고나면 옷이 빨리 헤졌으므로, 주부들은 빨래가 마른 다음에는 한밤중까지 바느질에 매달렸다.

탄광촌에서는 탄가루 때문에 옷이 금세 더러워졌으므로 빨래의 양이 많았다. 게다가 탄광촌은 산악 지형에 있어 물마저 귀한 탓에 더 힘들었다. 탄광촌 주부들은 매일 닦아내도 정신없이 쌓이는 탄가루와 싸움하면서 살았다.

사택에 개인 수도가 보급되고 나서도 1970년대에는 시간 물로 나왔기 때문에 주부들은 밥 시간, 수돗물 시간, 연탄불 시간, 남편 출근 시간을 지키면서 살아야 했다. 아무리 일을 해도 표시도 안 나던 시절, 탄광촌 주부들은 ‘살림은 탄광촌 여자들이 제일 잘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과거의 급수난 이야기가 2009년 1월 초순부터 3개월 동안 지독한 갈수기를 겪은 태백시의 현재형으로 나타났다. 하장댐의 물이 말라 태백지역 주민전체가 하루 한 차례씩 제한급수를 받았다. 지역 주민들은 재난지역 선포를 요구했고, 전국 각지에서 생수 구호물자가 몰려들기도 했다. 지금 세상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어째 태백시는 30년 전, 40년 전으로 퇴행하고만 있을까? 목련 개나리 피고 진달래 피는 4월에 무진장 찾아오는 철없는 봄눈이 태백시의 갈증을 없애기를 바랄 뿐이다. 4월에 전하는 대설주의보 기상예보를 듣는 2009년, 강원 산간의 한가운데 우뚝 선 태백시의 이마가 유난히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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