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나 북한이나 가릴 것 없이 탄광촌의 공휴는 귀했다. 북한의 아오지 탄광에서 돌아온 허재석은 끔찍한 탄광생활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탄광은 원래 한 달에 두 번 놀면 잘 노는 것인데, 명절이라도 일할 때가 많습니다. 포로들은 일요일이고, 명절이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포로들과 같이 일을 한 사회 일반 노동자들은 일요일이면 쉴 수 있었습니다”(「살아서 돌아온 국군포로 허재석의 아오지 탄광 체험 증언」,『월간 조선』2004년 6월호)

1980년대 중반까지 남한 역시 석탄생산량에 매달리느라 공휴는 한 달에 1∼2번이 고작이었다. 탄광촌에서 ‘우리 남편 공휴 나나 마나’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휴일 없이 일하는 탄광노동 실정을 대변한다. 노동에 지쳐 모처럼 찾아오는 휴일이 되어도 잠만 자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야속한 아내의 심정을 드러낸 말이다.

태백시 장성동에 소재한 천주교 장성성당은 일요일 오전 미사와 저녁 미사를 드린다. 일요일 저녁 미사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의식이다. 탄광촌 성당에 생긴 저녁 미사는 일요일 오전 탄광에 출근하느라 참석하지 못하는 광부 신자들을 배려해 마련한 것이다. 광부들의 삶은 다른 지역과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일요일마저 공휴가 없는 현실을 탄광촌 성당의 일요일 저녁 특전미사가 입증하고 있다.

광부들은 귀한 공휴일을 제대로 즐기려고 계를 만들었다. 당시 탄광촌에서는 친목계가 활성화되었는데, 1980년대 중반 들어서는 일부 돈놀이계, 금반지계, 관광계 등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계는 공동체 중심으로 건전하게 운영되었다. 광부들의 공동체 문화가 반영된 친목계로는 같은 작업장 광부들끼리 모임인 막장계와 방우리계, 아침에 출근하는 노동자끼리의 모임인 상갑방계나 조갑방계, 3교대 중 같은 근무 시간대 광부끼리의 모임인 가다계, 같은 사택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인 사택계, 그 외에도 형제계, 남매계, 고향계 등 명칭도 다양하다. 광부들은 계를 중심으로 동료애와 탄광촌 주민공동체를 공고하게 다져갔다.

탄광촌의 인기 쌀브랜드 석공쌀 그리고 악명 높던 광산미

탄광촌에서 최고의 생계 수단은 쌀이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쌀을 꾸거나 빌려주는 일은 일상이었다. 급전이 필요할 때는 쌀을 팔아 돈과 부식을 마련했다. 1950～1960년대의 보릿고개를 지나고도 쌀은 여전히 부족했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쌀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1960년대 말부터 혼분식을 장려했다. 학교에서는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하는 노래를 매일 부르도록 했다. 또 매주 수요일을 혼분식 날로 정하고 교사들이 도시락 검사에 나섰다. 혼분식을 실천하지 않고 쌀밥만 싸오면 화장실 청소 같은 벌을 내렸다. 수요일이면 부잣집 학생들도 빵이나 보리밥 또는 조밥을 먹어야 했다.

1970년대 중반만 해도 대다수 광업소에서는 현금 대신 쌀로 급여를 지급했다. 4～5개월씩 급여를 체불하던 영세광업소는 광부들이 굶지 않을 정도의 쌀을 임시로 배급한 후에 급여에서 쌀값을 공제했다.

광부들은 돈이 필요할 때는 쌀을 되팔았으며, 물건이 필요할 땐 시장에 가져가 물물교환하기도 했다. 민영 탄광에서 급여 4∼5개월 연체는 흔했으니 쌀을 타서 현찰로 바꿔 쓰는 것이다. 때로 단골 싸전이라도 생기면 돈을 빌리고 나서 쌀을 탄 뒤에 갚았다. 광업소 쌀 배급이 시작되면 장성, 황지, 도계 같은 탄광촌에서는 배급소 인근 공터마다 천막을 치고 큰 대야를 여러 개 놓고 쌀을 사들이는 장사치들이 늘어섰다.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탄광노동자들로부터 쌀을 원가의 70%도 안 되는 헐값에 사들였다. 광업소의 쌀 배급, 그리고 쌀을 되팔아 현찰로 바꾸는 광부들의 생활은 가계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쌀을 직접 들고 나가 팔아서 돈으로 바꿔오던 풍습은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전표로 바뀐다. 급여에 해당하는 쌀 40kg 혹은 80kg이니 하는 양을 전표로 받아 쌀집으로 가져가서 현찰로 바구는 것이다. 되파는 손실금은 조금 줄어들었다.

현금이 많이 필요한 명절이 가까워올수록 쌀을 팔아 돈을 구하려는 탄광촌 주민들이 많았다. 이  때는 팔려는 쌀이 많았으므로 시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아야 했다. 명절이 지나면 빚 얘기로 떠들썩할 정도였다. 급여가 쌀로 지급되던 시절에는 가정의 부채가 줄지 않았다. 쌀은 헐값에 상인들에게 넘기고, 쌀을 살 때는 비싸게 사서 썼으니 탄광노동자들의 부채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어떤 광업소는 급전이 필요해서 가불을 신청해도 쌀로 지급했다. 그러면 그 쌀을 들고 쌀집에 가서 현금으로 바꿨다. 이 쌀은 다시 광업소의 배급 쌀로 들어갔으니 그 악순환의 고리는 오래갔다.

탄광촌에 고리채가 성행한 것은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탄광촌의 쌀장사는 떼돈을 벌었다. 일부 탄광 간부들까지 쌀장사로 뒷거래에 나서 돈을 챙겼다. 그러자 탄광에서는 임금을 쌀로 지급하는 제도가 지닌 폐단을 줄이려고 현금과 쌀을 반반으로 지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