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동발 지주목을 세울 때, 나무가 자라는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세운다. 즉 나무 윗부분이 아래를 향하고 뿌리 부분이 위를 향하게 한다. 하중을 받는 부분이 측면보다는 상부에서 내리누르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동발 밑 부분은 단단해야 한다.

거꾸로 세우면 나무 밑 부분이 잘 안 갈라지고 단단하게 힘을 받는다. 탄광에서는 동발을 거꾸로 세우는데 빗대어 세상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자주한다.

우리나라의 말은 반말과 존댓말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으나 탄광에서만큼은 윗사람, 아랫사람 구별 없이 너나들이한다. 그렇게 무람없이 함부로 말을 해도 흉허물이 안 되는 곳이 탄광이다. 심지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육두문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윗사람은 욕설로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모든 게 거꾸로 세운 동발을 닮아서라고 푸념하고 만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탄광 막장의 앞뒤 작업조로 일할 때, 아들은 앞서 아버지의 동료조가 작업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에이 ××, 누가 이렇게 ×같이 해 먹었어!’ 한다. 참으로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탄광에서는 탄을 ‘캔다’는 말을 ‘해 먹는다(해 먹었다)’고 표현한다.

아버지에게 험한 욕설을 퍼부어도 후레자식 욕을 듣지 않는 곳이 탄광막장이다. 채탄과 굴진 작업은 앞의 조가 일하던 곳을 이어서 작업한다. 앞의 조가 했던 작업이 뒤에 작업하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목숨 걸고 욕을 퍼붓는다.

아들뻘 젊은 사람한테 욕을 듣고도 그저 ‘거꾸로 세운 동발이 거꾸로 가는 세월을 만들었다.’라며 어이없이 웃을 뿐이다.

탄광촌에는 전국 최고의 상스런 욕설이 자리한다. 태백 탄광촌은 전국에서 한 개 면을 제외한 모든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산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탄광촌의 별명이 팔도공화국이다. 팔도공화국답게 욕설 또한 전국 최고이다. 육두문자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니미×팔’에서부터 시작해, ‘×같이’, ‘씨×놈’ 등은 말 앞뒤마다 저절로 붙는 접미사, 접두사였다.

싸울 때 보면 무지막지한 욕설이 오간다. 탄광촌 싸움을 처음 구경할 땐 무슨 살인이라도 날 것 같아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자꾸 구경해보면 그만큼 시시한 싸움도 없다.

닭싸움만도 못한 것이 탄광촌 사람들 싸움이다. 욕설만 요란했지, 몸으로 하는 완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싸울 때 욕이나 말싸움 잘하는 사람치고 주먹 잘 쓰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탄광촌 사람들의 싸움 또한 서로 마주 보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주고받다가 싸움끝 무렵에는 죽이겠다고 서너 차례 협박만 하는 게 전부이다. 싸움 구경의 백미라 할 치고받는 장면이 없으니 구경꾼으로서는 따분할 지경이다.

탄광촌 사람들 싸움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그렇게 서로 죽일 듯 싸우고 나서는 뒷날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다음날부터 서로 웃으며 잘도 지냈으니 뒤끝이 깨끗한 것도 광부들의 전형적인 성품이다.

목숨 걸고 하는 작업에 이력이 붙다 보니, 매사 이것이 마지막이라 하고 악착같은 데가 있을 뿐이다. 싸울 때는 죽일 듯 으르렁대다가도 다음 날에는 언제 죽자 살자 했는지 깡그리 잊는다. 광부들은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거꾸로 세운 동발, 거꾸로 가는 세상에 살다 보니 광부끼리는 나이 차이가 20살이 넘어도 서로 ‘어이 김씨’ 하면서 친구하듯 한다. 부모 자식 같은 나이 차이가 나도 서로 맞담배를 하고, 술자리가 끝나면 으레 어깨동무를 하고 유행가 소리 높여 사택을 휘젓는다.

탄광에서는 이를 빗대어 ‘애도 한 공수, 어른도 한 공수’라고 불렀다. 공수라는 것은 하루의 노동을 의미한다. 애나 어른이나 한 공수라는 것은 갓 입사한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 구분할 것 없이 한 사람 몫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에는 갓 입사했거나 오래된 경력 광부나 받는 급여가 똑같다는 자조 섞인 심정도 포함돼 있다.

‘탄광에서는 위로 십 년, 아래로 십 년은 모두 벗’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10여 년 정도의 차이는 친구처럼 너나들이 했다. 언어를 친구처럼 사용하면 격의가 없어 서로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탄광촌에서 확인되고 있다. 탄광에서는 친숙해져도 형이나 선배 같은 호칭은 잘 쓰지 않는다. 형이나 선배보다는 ‘김씨’, ‘이씨’, ‘강씨’ 하면서 성 뒤에 씨를 붙여 부르는 호칭이 일반적이다.

동발을 거꾸로 세우듯 거꾸로 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탄광촌의 삶. 위아래 없는 무질서, 그 격의 없는 사람 관계가 광부들 간에 정을 더 깊이 쌓게 했다.

목숨 걸고 일하는 작업환경이었기에 서로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았고, 또 인생의 막장에서 만났다는 동병상련의 정이 끈끈한 동료애를 만들어 냈다.

탄광촌에서 며칠 묵다가 돌아가는 외지인들이 “탄광촌 사람들 참 순박하다”, “인정이 많다”라고 말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무 동발 대신 철제 동발이 들어서면서 거꾸로 세우는 동발이 사라졌다.

시대가 변하면서 탄광막장에서 욕설도 사라지고, 10년 지기의 너나들이도 사라졌다. 그러나 막장의 정만큼은 잊지 못할 것이다. 순박한 탄광촌 사람들, 각박한 산업화의 진행 속에서도 인간미 넘치는 훈훈한 정으로 한 세상 살아가던 광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