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에서는 어지간한 규모만 되면 하청탄광(일명 조광 혹은 덕대)을 거느리고 있었다. 모광(직영이라고도 부름)과 하청탄광 간의 부조리는 적지 않았다.

모광 아래에 조광 혹은 덕대로 불리는 하청탄광이 있었고, 또 조광 아래에 모작패를 두고 있었다. 모작패란 하청탄광의 하청으로 탄광에서 광부 몇 사람이 한패가 되어 채광하는 것을 말한다. 모광 측에 계약한 생산물을 주고 남은 광석을 제련하여 이익을 덕대(남의 광산의 일부에 대한 채굴권을 맡아 경영하는 사람)와 광부들이 분배한다.

하청탄광에 소속된 영세탄광 광부들의 삶은 곤궁했다. 특히 모작패는 모작주 만 노동자로 등록되어 있을 뿐 모작패의 노동자들은 등록도 안 되어 있다. 이들은 직업병에 걸려도 기록이 없어 보상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청업의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청탄광이 생산한 석탄은 모광의 석탄이 다 수송된 다음에야 역두(驛頭)저탄장으로 수송해야 했으므로 판매할 경로가 막힌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하청탄광에서는 계약된 분철료 외에 뒷돈을 모광의 관계자에게 상납해야 했다. 이러한 일은 전체 하청탄광들이 겪던 설움이었다. 또 하청업자들은 모광에 수량을 채우려고 검탄부에게 탄을 사서 되팔기도 했다.

운송할 때는 전표가 발행되는데, 운탄(운반관리책임자) 1장, 모광 1장, 하청 1장씩 각각 보관했다가 한 달 단위로 하청탄광이 사용한 톤당 사용료를 지급했다. 이때 하청탄광에서는 톤당 생산 계약 금액을 모광측에 지급하고 남는 돈을 수익금으로 가졌다. 하청탄광은 적게 생산한 것처럼 하여 탄을 많이 실어내면 이익이었다. 3톤 광차에 탄을 많이 실으려고 광차 양쪽으로 나무판자를 덧대어 탄을 수북하게 싣고 나갔다. 그런 과정을 눈감아 주는 것은 모광 관계자들의 이해가 있어야 했다.

하청탄광 측에서는 수송료를 아끼려고 돌방을 미리 쳐서 많이 싣고 나간다. 여기서 ‘돌방친다’는 말은 광차에 탄을 싣고 나갈 때 앞뒤 광차가 부딪히면서 탄이 제자리를 잡아 쑥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돌방치는 것 때문에 굴속에서 싣고 나온 생산량과 역두까지 싣고 가서 팔 때의 양은 달랐다. 굴속에서는 30톤 어치를 싣고 나와서도 돌방치고 나면 25톤 어치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고려하여 공식적으로 감손처리를 인정하는 데, 이때 감손처리를 더 잡아서 비자금을 만든다.

이 과정에는 역두에서 근무하는 모광의 직원들과 수송과장 등이 개입된다. 조광에서는 이들과 결탁해 돌방쳐서 줄어든 것으로 처리하고서 이익금 중 일부는 다시 모광 사무실과 역두직원에게 상납을 한다. 뒷돈 만들기는 역두저탄장이 생산현장보다 쉬웠으므로 검탄원이라든가 역두에 상주하는 수송과장, 선탄과장 등은 대체로 탄광업주의 친인척이 맡았다. 그래서 사장과 검탄, 선탄, 수송 관리자들의 성씨가 같은 경우가 많았다.

역두뿐 아니라 갱내에서도 하청과 모광의 은밀한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 모작주가 굴진 보조비를 더 타려고 20미터를 굴진한 뒤 30미터 했다고 보고한다. 하청은 모광의 갱장(坑長,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항장이라고 불렀음)이 묵인해주는 대가로 이익금 일부를 건넨다.

하청탄광의 비리에 대해서는 모광의 사무실 직원들도 상당 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하청업주나 모작주들은 명절이나 분기별로 사무실 직원들에게 일일이 봉투를 돌렸다. 봉투 하나에 당시 월급의 절반 정도가 들어 있었으니 상납액도 엄청났다.

모광이 하청의 돈을 상납 받아 다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중의 일부는 모광의 먹이사슬 윗 단계에 해당하는 관련기관에 갖다 바쳤다. 모광은 비자금을 마련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하청탄광을 이용하고 있었다.

제일 손쉽게 큰 액수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하청업체와 계약할 때 계약금액을 최대로 잡고 나서 일부분을 하청으로부터 되돌려 받는 것이다. 여기서 생겨난 돈은 회사의 비자금이 되었으며, 일부는 관련 관공서의 로비자금으로 쓰였다.

모광 측이 제일 두려워한 기관으로는 광업진흥공사, 노동부, 산업자원부(예전 동자부), 광산보안센터, 경찰서, 검찰 등이었다. 이들은 굴진, 채탄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부서이거나 안전관리 를 감독하는 기관이다.

하청탄광이 표현하는 ‘윗사람’은 모광인데 반해, 모광 사람들이 표현하는 ‘윗사람’은 감독기관의 사람들을 지칭했다. 노동부나 광업진흥공사 등의 감독기관에서 시찰을 나온다 하면 경리계에서 봉투마련 하느라 바빴다. 특히 ‘광진’이라고 부르는 광업진흥공사가 최고 상관 대접을 받았다. 광진은 굴진 및 생산보조금을 지원했으므로 ‘광진이 눈만 감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있었다.

광업소는 산업재해가 잦아 병원과 노동부의 관계도 밀접했다. 특히 탄광촌은 탄광이라는 단일 산업으로 구성되었으므로 노동부의 위세가 대단했다. 태백시에서 간호사를 기쁨조로 동원하여 술자리를 가진 노동부의 추문도 탄광촌에서 갖는 노동부의 위세 때문에 가능했다.

1995년 태백시 장성병원(현 태백중앙병원) 간호사들은 노동부의 접대자리마다 기쁨조로 동원되어 술시중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 태백시가 떠들썩했던 이 사건은 탄광촌의 먹이사슬 고리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하겠다.

직장 내 성희롱을 감시·감독해야 마땅할 사업주와 지방노동사무소가 피고용인에게 일상적인 성희롱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태백시 장성병원(원장 추연상) 간호사 집단 성희롱 사건과 관련 ‘서울대조교성희롱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2일 성명서를 발표, 철저한 진상조사와 간호부장, 태백지방노동사무소장, 장성병원장 등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장성병원 간호사 20여 명은 91년부터 지금껏 1달에 2∼3차례 걸쳐 태백시 지방노동사무소들을 접대하는 술자리에 강제로 동원되어, 술시중을 들었으며 춤 상대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태백노동사무소는 장성병원이 청구하는 산재의료비 등을 심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병원은 술자리에서 간호사를 동원하여 사무소 직원을 접대해왔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그들은 우리를 기쁨조라고 말하는 등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었다. 이제 더이상 참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사건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5월 16일 간호사들은 산재의료관리원에 진정서를 보내어 병원 특별감사를 요구했고, 술자리 동원에 앞장선 간호부장은 1개월 감봉과 타지 전출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병원 측은 문제를 제기한 5명의 간호사들에게 보복성 인사와 협박을 가했다고 한다. 이에 1백20여 간호사들은 병원의 횡포에 항의, 8일째 농성을 하며 보복인사 철회와 간호부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예방할 책임이 있는 노동부 간부들이라는 데 더욱 큰 비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병내 업무상 하위에 있는 간호사들이 피해자라는 점에서 병원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풍토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성희롱은 여성의 근무의욕과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시키는 인권과 노동권 침해”라고 밝혔다.

- 〈성희롱에 멍든 백의의 천사〉,《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사랑방, 1995.6.7.